주저할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사고와 판단을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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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명흔 위에서도, 어디서 주워 왔을 깃발까지 들은 ‘그’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과 사의 결심을 배신당하여 홀로 남겨진 이는 제 그이를 꽤 잘 흉내 낸 저이를 보고 인정했다,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고. (생전의 그에게 늘 타박하던 듯이 말이다) 생명을 잃어 (정말로? 의문은 곧 해소될 것이다) 동의 없이 (진짜? 이 또한 그럴 것이다) 모방당한 (정말, 진짜로?) 채여도 너는 ‘여전히’ 너다. 새하얗고, 붉고, 검은 머리카락, 반반한 낯, 솜털 같기도 한 귓가의 깃털 (조금 더 날개처럼 자라난 듯한 점은 제 착각일지도?)까지, 늦가을에 대비하던 따스한 옷차림, 흉측하게 (누구의 혈흔인지 알 수 없는) 피에 절고 너덜너덜한 붉고 푸른 깃발까지, 저를 바라보며 안심하라는 듯 늠름한 미소를 짓는 것까지, 너는, ‘여전히’, 너. 그래, 너-너를 기다렸어, 발성의 원리가 다른지 목울대가 움직이지도 않으나, ‘우리’의 목소리는 바람이 대변해준다는 듯이, 음성은 고막이 아니라 척추 신경에 새겨지듯 깊었고 또렷하기 그지없다. - 이 육신의 동포가 죽기 직전의 직전의 직전의 직전의 직전까지 너만을 떠올렸고 너만을 걱정했으며 너만을 만나고 싶어 하였고 너에게만 돌아가기를 원했거든. 달빛 아래, 더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수줍은 듯한 소태, 유품을 한 손에 들고 있던 자, 쏜즈는 핏자국도 닦아내지 않은 이 낡은 통신기가 생각 외로 꽤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독백은 마치 현혹과도 같아서, 닥쳐라, ■■■■이 순순히 네놈들과 함께하기로 했을 리는 없으니까, 절대로, 일갈하면서도 이미 제가 저들의 덫에 걸려들었음을 뒤늦게 수긍한다. - 박사가 적 앞에서 언어를 구사하지 말라고, 학습하게 두면 안 된다고 당부했었는데, 비이성적이고 나답지 않게 나약하게도 저는 바로 입을, 값싸게 열어버렸다… …. 입을 열어버렸고, 꽤 보기 좋게 반박당해 버렸다. - 그럼, 물론이지, 이 관념의 전-소유자는 순순히 우리의 동포가 되지도, 양분이 되지도 않아 애를 먹었으니까, 이 문구까지는 큰 동요를 불러오지 못했지만 - 그러나 시간은 결국 우리의 편, 시간은 위매니의 편, 이 자가 바다의 품을 사흘 내내 거부했어도 끝내 위매니의 품에 떨어짐은 당연한 순리야, 이 노랫소리는 해일처럼 큰 동요를 불러오고 만다. 사… …, 사흘이나, 흘이나, 살아 있었다고, 분투했다고, 그렇다면 내가, 모두를 뿌리치고 진작에, 너를 찾아갔었으면… …, ■■■■은 초승달처럼 우아한 웃음을 짓고, 이에 불현듯 쏜즈는 핏자국도 닦아내지 않은 이 낡은 통신기가 생각 외로 족쇄처럼 저를 옭아맨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의 기준으로 표현하자면, 맞아, 그리고 이어서, ‘생-존-해’ 있었던 거지, 이제 제게 남은 선택지는 차악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는 점에 내심, 안도한 그의 시체처럼 죽은 낯빛에 혈색이 돌았다, 이미 본래의 색을 잃던 혈액일지라도.
새파란 명흔 위에서도, 누가 감정을 가르쳐 주었는지 기뻐하는 ‘그’는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과 사의 결심을 배신당하여 홀로 남겨진 이는 제 그이를 꽤 잘 흉내 낸 저이를 보고 인정했다, 그럭저럭 비슷하다고. (생전의 그가 너무나도 낙천적이라도 생각하던 듯이 말이다) 어서, 이리 와서 잡으라는 듯 ‘손’을 (비록 촉수처럼 길고, 매끈하고, 흐느적거리지만 말이다) 내미는 모습까지, 지나치게 잦고 과도한 전투로 서서히 인간의 형체를 잃어가던 ■■■■과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아서 쏜즈는 무심코 등 뒤를 한 번, 바라본다, 최후로 - 니어 가문이 목숨의 기저까지 빛으로 승화하며 가동한 철수용 방벽은 무심한 하늘을 꿰뚫어서 경종을 울리겠다는 듯 두껍고, 차갑고, 높고, 길다. 이미 닫혀버린 저 안으로 들어갈 길은 없겠지, 제가 스스로 내버린 생존 수단을 후회하면서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으니! 쏜즈는 이곳에 남았다.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지만) 에기르인은 홀로 해안에 서 있었고, (금시부터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지만) 손에는 형광빛이 나는 시약을 들고 있었다. (그 약병은 외투 주머니에 잘 들어 있다) 이 시약을 만들 때, 그는 언젠가 이걸 사용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다. 단지, 언제 사용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뿐 - 불필요한 짧은 상념을 끝내고 피하지 못하는,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 - 전방을 직시하면 자리에서 벗어나는 시테러와, 그들을 지휘하듯 우아하게 손짓하는 ‘리베리 남성’ 하나가 너른 시야를 막고 있기에 그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몰려드는 인파를 헤치며 역류하듯 바다로 나아간다, ■■■■을 향해. 제 손으로 운명을 창조하고, 결정하기 전에 질문하고 알아야만 하는 의문이 있다, 단 하나가. 두 번째 대침묵이 고향 땅을 뒤흔들 때부터 한숨이라도 떨어트린 적 없던, 스승의 배까지 가르던 무자비하게 뾰족한 검을 품고 그는 심해로 나아간다, ■■■■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인두겁을 쓴 생물의 목전에서 고함친다, 순리에 거역하듯 : 엘리시움은 어디 있지? 그래, 해소되지 않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 의문, ■■■■이 엘리시움을 양분과 동포로 소화했고, 그를 모방하여 제 앞에 등장했다면 저를, 쏜즈, 그를 찾아오게 한 것은 과연, 위매니의 의지인가, 아니면 엘리시움의 의지인가, 쏜즈는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규명하지 못하였고 - 선생님은 위매니가 덮어버린 개체의 의지에서 굳이 예외를 만들어 이곳까지 이끌렸지만, 구름처럼 하얗던 홍채가 붉어진 채로 저를 아무리 꿰뚫어 보아도 그는 아니잖아, 그 일그러진 형상을 하고 나를 찾음이 엘리시움의 의지일 리 없어, 스스로 답을 찾아야만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내 말이 틀렸나? 반드시, 그것이 이미 진실을 잃은 회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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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명흔 위에서도,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이 미지의 생물과 함께 자신은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과 사의 결심을 배신당하여 홀로 남겨진 이는 제 꼴을 훑어보고는 인정했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큰 문제가 없다고. (이런 결론을 타박할 자도 남아 있지 않으므로) 혈류가 용솟음치듯 꿈틀거리고, 이물질이 더 이상 칠규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며 대해가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고 있어도 쏜즈는 여태 ‘인간-에기르인’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고막과 달팽이관까지 제 역할을 너무 충실하게 수행하니까. ■■-■■은 오기 싫다고 저 밑에 있어. 명흔으로 이어져 있던 깃발이 배려 없이 거칠게 모래사장에 던져지고 그라는 개인의 현 의지는 새 동포로 너를 맞이하기는 싫나 봐, 애석하게도, 쏜즈는 무의식적으로 너덜너덜해진 통신기의 녹음을 재생했으며 하지만 위매니의 의지로 통합되기 전까지 가진 궁극의 열망 - 너, ■-■를 다시 보고 싶다는 욕망은 우리 동포들의 집단의식에 깊게 뿌리박혔으니까, 충혈된 두 금안을 내리감는다, 그래서 ‘우리’는 ■■-■■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네가 필요해, 지직거리는 지친 음성이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 라며 고백하는 단 3초의 회귀로, 군집의 의사를 방어함에 실패해도 그는 여태 가시 돋친 고독한 독립적 간신히 영혼을 유지한다. 후, 새벽에 접어들어 차가워지는 기온에 숨결을 하얗게 피워내면서 엘리시움은 너희와 함께 있나? 허리께에 넘실거리는 너울 속에서 숨을 고르자 ■■■■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 쏜즈와 같은 방향으로 먼 수평선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위매니는 육체에 구애받지 않고 순환에 따라 흐르니까, 의식의 파편이라도 찾고 싶다면 찾아낼 수 있어, 심장을 움켜잡는 인간 하나를 가엾도록 내버려 두고. 아아, 그래, 그거면 되었다, 그 답이면 충분히 되었다, 흐느적거리는 ‘무언가’의 ‘손’이 저를 움켜쥐어도 한 과학자의 사고회로가 중단되지는 않으므로 전신의 혈관이 통제를 잃은 듯 날뛰어도, 뼈, 살, 피부라는 방어막에 가로막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지 못하여 아쉽다는 듯 고동치는 혈액이 역류했으나 논리 과정은 확장을 계속한다. : 아무리 수천 개의 깃털처럼 흩어져 있더라도 ‘엘리시움이란 인간으로서의 자각’이 잔류하는 이상 그는, 제 앞에서 놓쳐버린 절친을 구출해야 한다는 의무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의무가 생겨버린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반드시 도전해야만 하는 의무가 생겨버린다.
새파란 명흔에서 고동치는 심장 박동이 승리를 알리는 북소리처럼 퍼졌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홀로 선 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 참 상냥하기도 하지, 시테러는 자상함마저 계승하는가? 가자, 쏜즈. 우리와 같이. 같이 가면 행복해지나? 그럼, 행복해지지. 엘리시움이자 ■■■■이 아닌 엘리■■이 제 등 뒤에서 어깨에 오른손을 올리는 것을 전신으로 받아들이며 쏜즈는, 제 은사의 팽창한 몸집을 가르던 때를 회상한다. 마비 독을 잔뜩 칠한 검날이 제 명치(로 추정되는 것)에 박혀, 수직으로 복부를 갈랐는데도 웃고 있던 제 스승, ‘기억 속처럼 여전하던 그’, 나는 늘 네가 옳은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뱀의 유혹처럼 속삭이던 당당함 - 우수를 오므렸다가 펴도, 바다의 색채를 띤 질척한 혈액은 생동감 넘치도록 전신에 묻어 있는 듯했고 전부를 알고 있다는 듯한 기대감은, 벼락처럼 영혼에 각인된 지 오래. 아, 탄식이 절로 이어진다, 어째서 ‘예고’도 없이 웃으며 저를 찾아왔고, ‘아쉬움’도 없이 웃으며 생명 활동을 중단해 가는 육신을 고향 품에 돌려보냈는지 너무 뒤늦게 깨달은 나머지, 나는 시간을 꽤 오래, 무의미하게 허비하였는가 자문하여도, 저답지 않게 회피하는 자신은 그렇다고 확언할 수가 없으며 그저, 철썩이는 물결과 같은 고동으로 살아 숨 쉬는 심장만이 저들은 죽음조차 개의치 않으며 - 하나의 순환일 뿐이므로 - 육신의 사멸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것 - 서로의 살과 피는 달콤한 양식일 뿐이므로 - 제가 선생의 변이한 신체를 갈라 멸했다고 여겼어도 그를 온전히 멸하지 못했으며 멸할 수도 없다는 것, 그것만이 너무나도 뒤늦은 깨달음일 뿐. 적혈구가 말초신경부터 대뇌피질까지 돌고 도는 것처럼, 얼음장 같은 해류가 에기르의 밑바닥에서 이베리아 해안까지 돌고 도는 것처럼 나와 나의 스승과 나의 스승의 동료와 나의 동료는 생과 사마저 세계 법칙에 종속되었으며… …. 아이야, 하얀 포말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이베리아로, 고향으로 향한다, 나는 늘 네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스승의 유언은 망령처럼 저를 잠식하며 속삭인다, 올바른 길, 내가 원하는 길만을 스스로 선택하기를, 그러나 선생은 막상 제게 가장 중요한, ‘어디가 올바른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 뻣뻣한 인간의 고개가 인간의 탈을 쓴 미지에게 삐걱삐걱 돌아간다, 어린 시테러와 함께 물장구를 치고, 제게 미소 짓는 양은 목전에 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그의 영광스러운 시신이 능욕당한다는 분노를 주어 검사는, 벌꿀 색 쌍안을 희번득하게 부라린다 - 한 달, 연합이 이 해안가에서 철수한 지 한 달이 되는 지금까지, 절망의 해안가를 단독으로 노니며 쏜즈는 줄곧 답을 찾고 있었고 엘리시움이 명운을 다한 이상, 우리는 대지의 법칙에 종속되었고, 반역하지 못하였지만, 그렇지만, 자신의 육체가 그들의 일원으로 변한다면, 바다 그 자체에 피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바다를 갈라, 바다의 의식을 갈라, 검처럼 날카롭게 벼린 영혼과 정신, 이성으로 독처럼 스며들어 신경을 교란하고, 군집 사이에서 아주 작은 파편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엘리시움? 응, 친구야, 그는 알고 싶었다. 가자, 이것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 의문이다. 같이 가자, 하루라도 풀리지 않는 한, 그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계속 탐구할 수밖에 없다, 설령 그것이 오답일지라도.
해안과 육지의 경계에서 점점 멀어지던 이에게, 너울은 어느새 가슴 밑까지 올라와 넘실대고 소금물에 흠뻑 젖은 소매 속에서 작은 약병이 뒹굴었다,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결정할 수 없는 약물, 제 은사의 혈액이 섞인 것이. 그 누가 바다의 색깔을 정확히 말할 수 있을까? 얼핏 본 ‘엘리시움’은, 여전히 눈길을 느끼면 방긋 웃는다 - 그제야 쏜즈는 꽤 길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찾았다, 그 미소가 차가웠던 이유, 호선을 그린 입가와 대비되는 굳은 눈매, 온종일 재잘거리던 리베리답지 않게 적은 말수. 역시 강제로, 남겨진 육신을 껍데기처럼 뒤집어쓰고 즐거운 태도와 행복한 표정을 답습해도 개인의 신경다발과 호르몬이 생성하여 뇌에 의하여 결정되는 ‘정서’까지 소화함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쏜즈는, 그는, 걸음을 잠시 멈춘다, 너는 어떻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지? 제대로 본 ‘엘리시움’은, 여전히 방긋 웃는다 - 바다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어. 그제야 쏜즈는, 제가 과연 무얼 두려워하고 직시하고 싶지 않았는지, 그의 두 하얀 눈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 빛 한 점 없는, 검게 죽은 동공은 암흑과 무저갱처럼 깊고 아득하기만 하구나. 그래, 굳건한 구릿빛 팔뚝과 주먹에는 힘줄이 전부 튀어나온다, 객관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엘리시움이란 로도스 아일랜드 제약회사 소속 전위 오퍼레이터이자 이베리아 출신의 리베리 청년이며, 광석병 감염자였던 개체는 ‘사망했으며’ 현시 바로 옆에서 저를 인도하고, 심해 속으로 출정하는 이는 전신을 점유하는 명흔에 조종당하는, 죽어서도 쉬지 못하는 가엾은 망령일 뿐이라는 것을! 이봐, 손이 수리하지 못하여 이가 빠진 검을 움켜쥐었고, 넌 누구지? 우리는 위매니야, 동포여, 헛웃음만이 바다 내음에 섞여 들었다, 설령 이 비탄을 듣는 이 없을지라도.
네가 두려워하든 말든, 그것은 널 찾아갈 거야, 시에스타, 휴양 도시, 거짓된 바다에서 만난 한 이름 모를 가수가 그 말을 건넨 때부터 어쩌면 저는, 벗어나지 못하는 저주를 받은 게 아닐까? 왜 영영 떠난 줄로만 알고 있던 자들은 다시 나의 곁으로 돌아와 배회하며, 메아리처럼 나를 부르고, 왜 내 심혈관은 이 메아리에 종속되어 이끌리는 걸까? 두 극이 공명하듯 현재에도 그는 심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싶었고… …, 그곳에서 고독하게 방황하고 있을, 숨이 다해도 긍지를 지키느라 의지와 하나 되지 못하여 떠돌고 있을, 그렇기에 지금 제게 온전하고 완성된 개체로 돌아오지 못한, 어떤 한, 길 잃은 새를, 되찾아오고 싶었다. 길 잃어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길잡이가 잃은 길마저 길이었으니 그는, 육신을 잃고 해저를 맴돌면서도 제게 가야만 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과 다름없고 제가 똑같이 따라야 하는 이정표나 다름없다. 너울거리는 격랑은 그가, 엘리시움이 아끼고 애정하던 푸른빛이었다 - 나는 늘 네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선생님, 나, 이제 알 것 같아, 엘리시움, 이리 와, 재차 고래의 물기둥처럼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귓가의 이물질을 손등으로 무심하게 닦아내고는 반월처럼 검의 궤적을 그려낸다, 그려내어 집단지성의 본능으로 회피하던 시체의 목을 절반 잘라내어 고향으로 추락하는 몸뚱이를 붙잡고는 검을 저 멀리 지평선으로 던져버린다. 이리 와, 기생하는 숙주에 위협을 느끼자 빠른 속도로 꼬리 감추듯 물러가는 명흔을 지르밟으며 빗장뼈까지 차오른 물살 속에 시신을 흘려보내고는, 젖은 장갑을 벗어 옷소매의 영롱한 약병을 쥔다. 그는 한평생 별나다는 평을 듣고 살았으므로 쏜즈는 자아를 지킬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이성이 침식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제정신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제정신을 유지하여 바다를 가르는 검이 되고, 의지와 목표, 진화를 와해하는 극독이 되며 그 틈을 파고들어 저만이 바라는 꿈을 쟁취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만약 이 도박에서 지게 된다면… …, 아니, 제 판단은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으니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박사는 그의 모든 약점을 알고 있으니, 박사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쏜즈는, 그는 이제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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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할 필요 없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뜻의 절반도 이루지 못할 터이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사고와 판단을 따를 뿐이다. 그는 언제나 제가 내리는 결론은 최선의, 가장 합리적인 부류의 것이라 믿기에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 녹음이 바닷물에 합선되어 최후, 365번째로 재생되는 이 순간, 자기중심적인 에기르인은 시약이 든 주사기를 눌렀다. 그제야 마음에, 온 심실과 심방에 격랑처럼 가득 차오르는 편안함이, - 마치 이러기만을 바라 온 것처럼, 이래야만 하는 것처럼, 어떤 이의 죽음은 그저 기폭제일 뿐이며 어떤 다른 이의 유언처럼 올바른 길을 선택한 것처럼, 계속해서 저를 부르는 바다 깊은 곳의 무언가 중에, 꽤 그리워한 음성이 녹아 있음을 인제라도 깨달은 것처럼… …. 미안하다, 엘리시움, 내가 늦었지, 뒤늦은 각성에 늘 올바른 길을 선택하나 늘 한발 늦었던 에기르인은, 네가 싫든 말든 이제는 내가 너를 찾아가니 두 번 다시 늦는 일 없을 거다, 하릴없이 실소를 터트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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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향을 자신의 몸속에 천천히 주입했다.